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캐서린 헵번 (문단 편집) === 하워드 휴즈 === 포드와 아직 사귀는 중이었던 1937년 1월, [[케리 그랜트]]가 자신의 친구라며 미남 괴짜 거부 [[하워드 휴즈]]를 소개한다. 처음엔 응하지 않았지만 휴즈가 헵번이 다니던 [[골프장]]인 벨에어 컨트리 클럽[* Bel-Air Country Club.]에 나타난 뒤 매일같이 데이트하게 되었다. 그리고 1월 22일 LA 신문들은 일제히 휴즈와 헵번의 결혼 관측 기사를 낸다. 헵번은 그 뒤로도 몇 주 동안 휴즈와 계속 공개적으로 만남을 가져 언론에 대서특필 되고 있는 와중에도 포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민 끝에 휴즈와 끝내고 포드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했지만 그간의 언론 보도를 다 받아본 포드는 당연히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그해 5월 헵번은 포드를 포기하고 휴즈와 동거를 시작한다. 헵번은 휴즈 덕에 누릴 수 있게 된 호화로운 일상과 언론 및 대중의 관심을 매우 반기며 행복하게 즐겼다. [[오슨 웰스]]에 따르면, 헵번은 휴즈와의 성생활에 대해서까지 숨김없이 얘기하고 다니기도 했다. 헵번은 말수가 적고 어색한 태도의 휴즈를 '[[세례자 요한]]'이라 불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NKWEASQSVGQXJZ256BHUNNTUA.jpg|width=100%]]}}} || 헵번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에서 자신과 닮아있는 휴즈에게 동질감을 느꼈지만 [[존 포드]]나 후에 만나게 되는 [[스펜서 트레이시]]와 달리 휴즈를 사랑하진 않았다. 휴즈가 다른 여성들을 만나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휴즈가 제공하는 역동적이고 화사한 생활과 휴즈 덕에 어딜 가나 기자들이 몰려든다는 점이 헵번을 계속해서 크게 만족시켰을 뿐이었다. 1938년 휴즈의 청혼을 받았을 때 헵번은 당연히 이 생활상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하려고 바로 부모님께 인사 시켰지만, 부모님과 휴즈는 바로 서로를 싫어하게 됐다. 휴즈는 홀로 자택으로 돌아갔고, 가족들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헵번은 휴즈를 잡지 않았다. 그 뒤로 휴즈와 헵번의 관계에선 이렇게 정식 절차 없이 헤어졌다 붙는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 둘의 연애사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에비에이터]]>에 어느 정도 묘사되어있는데, 영화 속 모습이 다 실제의 반영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